생도 사도 당신의 뜻이 아니다
이자헌 개체A
이자헌은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울퉁불퉁하고 투박하게 생긴 오르막길일 때도 있었고 이끼가 잔뜩 껴 미끄러운 습지일 적도 있었다. 구석을 비집고 피어난 이끼는 세계 정복을 꿈꾸는 녹색의 반항 같아 보였는데, 놀랍도록 빨리 번지고 밟으면 미끄러워 두개골의 초전 박살을 유발한다는 점에서는 위험한 존재가 맞긴 하였다.
이자헌은 그런 초록 위를 달리는 사람. 사람이 아니고 존재. 인간이라는 단어는 그에게 너무나 작고 좁다. 그렇다고 우주를 가져다 붙이기에는 지나치게 멋 부린 느낌이라 어쩐지 마땅치 않으니 무어라 부르면 좋을까. 도피가 아닌 이유로 달리는 존재는 흔하지 않으니까, 방향을 알고 뚜렷한 목적을 지닌 채 나아가는 당신은 몇 없는 개체니만큼 우리는 당신을 D라 부르고 싶다.
그러나 이자헌은 우리 중 하나일 뿐.
선악의 기준을 공유하고 합리적인 결괏값을 입력하면 움직이는 당신은 지금 녹색을 밟으며 뛰고 있다. 그렇게 해야겠다고 우리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원 D, 도마뱀, 이자헌, 우리 중 하나는 소녀를 품에 안고 달린다. 시선으로 따라잡기 어려울 만큼의 속도로 움직이는 동안 창백한 다리가 모빌처럼 흔들거렸다.
그들은 도망치고 있었다.
현실, 더 나아가 우리를 이방인으로 여기는 세계로부터. 인간 세상의 상식을 우선하자면 당신들은 이곳이 허락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하지만, 괴담이 존재하고 그것들이 대로변을 활보하는 신시대에서 그런 규정은 의미가 없지 않은가.
“이자헌.”
“예.”
“힘들어?”
“아니오.”
그러면. 개체 A는 당신을 사유한다. 그러도록 이자헌이 가르친 결과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텅 비었고 그런 주제에 감정만 가득하여 그득그득 차오르는 괴로움과 분노, 고독, 질투 따위를 깎아내어 보기 괜찮은 부분만 겨우 남겨 둔 당신들의 선택이다. 그러나 질 나쁜 부분은 언제나 새로 돋아나고 개체 A는 그러도록 설계되어 지금도 이자헌을 쫓기도록 만들었다.
이자헌은 당신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어?”
“그럴 확률이 존재합니다.”
개체 A는 옷깃을 잡아당겨 이자헌의 찢어진 정장과 너덜거리는 머리카락, 어두운 산속에서도 밝게 번뜩이는 파충류의 동공을 가만히 살핀다. 빨강과 초록은 무자비하도록 들어맞지 않아 두 사람만 이곳에서 붕 떠 있다.
이자헌을 처분하는 것도, 개체 A를 처분하는 것도 자신의 결정권이 없다. 이자헌은 우리 중 하나이며 개체 A는 괴담 속 존재일 뿐. 회로를 끊으면 화면이 꺼지고 교체하기 전까지 살아나지 않는 오래된 텔레비전처럼, 낡고 오래되었고 옛것인 우리는 썩지 않도록 달릴 수밖에 없다.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은 인간의 흉내를 낸다.
아니, 낼 수 없다. 그들은 개체로서 존재하므로. 누구도 바꿀 수 없다. 훼손하도록 두지 않을 것이다. 부어도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독처럼 갈 길 잃은 감정의 미로에서 개체 A는 이자헌을 따라서 달린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괴담에도 인간의 마음이 깃들 수만 있다면…….